
작성일 : 2017-07-04 10:31
1347 (충목왕 3) ~ 1424 (세종 6) 호(號)는 월담(月潭), 시호(諡號)는 양경(襄景). 1380년(우왕 6) 흥위위 별장(興威衛別將)에 초임되어 군기시 소윤(軍器寺少尹)을 거쳐 창왕(昌王) 때 풍주(豊州)의 수령으로 나가 왜구(倭寇)를 격퇴하는데 공을 세웠다. 조선(朝鮮)이 개국되자 전중경(殿中卿)에 오르고 첨절제사(僉節制使)․형조 전서(刑曹典書)․찰리사(察理使)를 역임한 후 1400년(정종 2)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되어 녹산군(鹿山君)에 봉해졌으며 태종(太宗) 때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에 이르러 사은사(謝恩使)로 명(明)나라에 다녀와 동북면병마절제사 겸 영흥 부윤(永興府尹)․도순문찰리사를 역임하였다. 그 후 평양 부윤(平壤府尹)을 거쳐 병조 판서(兵曹判書)가 되어 평양군(平陽君)에 개봉되었고 뒤에 부원군(府院君)에 진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