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7-03 14:08
1582 (선조 15) ~ 1627 (인조 5) 자는 징언(澄彦), 시호는 장무(壯武). 1605년(선조 38) 무과(武科)에 급제, 선전관(宣傳官)․교동현감(喬桐縣監) 등을 지내다가 광해군의 난정을 보고 낙향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도총부 도사(都摠府都事) 죽산부사(竹山府使) 등을 역임하고, 이듬해 일어난 이괄(李 适)의 난을 평정한 후에는 의주부윤(義州府尹)․봉산군수(鳳山郡守)를 거쳐 1625년(인조 3) 안주목사(安州牧使) 겸 방어사(防禦使)가 되었으며,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후금에게 안주성이 함락되자 분신자결(焚身自決)했다. 좌찬성(左贊成)에 추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