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29 10:27
1574년(선조 7) 무과에 급제한 후 1592년(선조 25) 임진란(壬辰亂)에 용맹을 떨쳐 비장군(飛將軍)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1613(광해군 5) 곽재우(郭再祐)와 같이 폐모살제(廢母殺弟)에 대해 상소(上疏)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 适)의 난과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에 전공이 있어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경원 도호부사(慶院都護府使)에 이르렀다.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군량미 48석(石)을 보내어 두 아들을 종군(從軍)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