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의(參議) 송극심(宋克諶)의 아들이다. 인조(仁祖) 11년 서기 1633년 사마시(司馬試)에 입격(入格)하고 효종(孝宗) 4년 서기 1653년 별시(別試) 문과(文科)에 등과(登科)하여 병조(兵曹) 좌랑(佐郞),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 00 정랑(正郞)을 거쳐 효종(孝宗) 9년 서기 1658년 서장관(書狀官)으로 북경(北京)에 다녀왔다. 밀양(密陽)부사(府使)로 재임(在任) 시(時) 선정(善政)을 배풀어 많은 치적(治積)을 남겼으나 정론(正論)으로 왕의 뜻을 거슬러 파직(罷職)되기도 했다. 우승지(右承旨), 원주(原州) 목사(牧使)가 되어 학교를 일으켜 인재양성에 힘쓰고 병자호란(丙子胡亂) 이후(以後) 민심이 조선왕조(朝鮮王朝)에 이반(離反)하게 되자 부역(賦役)을 덜어 민심(民心)을 회복(回復)하는데 힘썼다가 임지에서 졸하였다. 좌찬성(左贊成) 겸(兼) 대제학(大提學)에 증직(贈職)되었다. 공은 7명의 아들과 8명의 손자(孫子)를 두어 칠광(七光) 팔명(八)明)으로 국가(國家)에 크게 헌신(獻身)하였다. 시양사(始陽祀)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