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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송씨] 송상현(宋象賢)

작성일 : 2017-06-27 14:51

()는 천곡(泉谷)이고 송복흥(宋復興)의 아들이다. 선조(宣祖) 9년 서기 1576년 문과(文科)에 등과(登科)하여 경성(鏡城) 판관(判官),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 호조(戶曹) 예조(禮曹), 공조(工曹) 정랑(正郞)을 역임하고 다음해 강쟁변무(康爭辨誣)의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선조 24년 서기 1591년 동래(東萊) 부사(府使)로 부임해 다음해 임짐년 413일 왜란이 일어나 그날로 부산진(釜山鎭)이 함락(陷落)되고 왜적(倭賊)이 동래성(東萊城)으로 쳐들어 왔다. 경상우도(慶尙右道)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박홍(朴泓), 경상좌도(慶尙左道)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이각(李珏) 등은 겁을 먹고 도망쳐버리고 수륙(水陸)의 양() 대장(大將)이 없는 동래성은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었다. ()은 왜침(倭侵)에 굴복(屈服)하느니 죽음을 택하기로 결심하고 독전(督戰)하는데 왜군(倭軍)전측전(戰則戰) 부전칙가아도(不戰則假我道)(싸우려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면 길을 터라)”라는 목패(木牌)를 보내왔다. 공은 신노(愼怒)하여 전사이(戰死易)가도난(假道難)(싸워 죽기는 쉬워도 길을 트기는 어렵다라고 답()하였다. 대전(大戰)이 벌어지자 조방장(助防將) 홍윤관(洪允寬)이 이곳을 피하자고 하자 제의하자 공은 단호히 거절하고 힐책(詰責)하기를 죽기가 무서우면 가거라라고 꾸짖고 독전(督戰)하였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송봉수(宋鳳壽) 등 충신들이 전사(戰死)하자 조복(朝服)으로 남루(南樓) 위에 앉아 국운(國運)을 축원(祝願)하고 부친(父親)께 혈서(血書)고성월운(孤城月暈)열진고침(列陣高枕) 군신의중(君臣義重) 부자은경(父子恩輕)이라 쓰고 큰 소리로 왜적을 꾸짖고 눈을 감으니 향년 42세였다. 공의 영구(靈柩)가 동래(東萊)에서 청주(淸州)로 떠날 때 왜군(倭軍)들도 모두 배례(拜禮)하였다 한다. 공의 충성스러운 행적(行蹟)을 담은 동래성순절도(東萊城殉節圖)가 있고 숭절사(崇節祀) 화항서원(華巷書院), 화곡원(禾谷院) 정충사(㫌忠祀) 충렬사(忠烈祠) 등에 배향(配享)되었고 숙종조(肅宗朝)에서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 숭정대부(崇政大夫) 의정부(議政府) 좌찬성(左贊成) () 홍문관(弘文館), 예문관(禮文館) 대제학(大提學)에 증직(贈職)되었고 순조조(純祖朝)에서는 부도묘(不逃廟)가 하사(下賜)되었으며 시양사(始陽祀)에도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