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開城)원윤(元尹) 송운(宋惲)의 6세손(世孫)이다. 세종(世宗), 문종(文宗), 단종(端宗) 3대를 치사(致仕) 형조(刑曹)참판(參判) 왕명(王命)으로 호남순무사(湖南巡撫使)로 직무 수행 중에 수(首)양(陽)대군(大君) 이유(李瑜)가 고명(顧命使臣)을 황보인(皇甫仁) 김종서(金宗瑞) 등을 참살(慘殺)하는 계유정란(癸酉靖難)으로 집권(執權)하면서 단종(端宗)을 노산군(魯山君)으로 감봉(減封)하여 영월(寧越)로 유배(流配)되자 그 곳에 가서 복명(復命)하고 여산(礪山)에 가 두문불출(杜門不出)하던 중 단종이 시해되자 재종(再從) 제(弟) 송경원(宋慶元)과 함께 계룡산(鷄龍山)에 들어가 초혼제(招魂祭)를 올리고 통곡(痛哭)하였다. 김시습(金時習), 조상치(曹尙治), 조여(趙旅), 정지산(鄭之産), 이성희(李成喜), 이번(李蕃) 엄흥도(嚴興道) 등(等)과 복상팔절(服喪八節)로 세인들의 숭상(崇尙)을 받았다. 여양마륜촌에 숨어 살다가 생을 마치니 동학사의 초혼각 동서원 숙모전 시양사에 배향되고 숙종조에 충강(忠剛)으로 증시(贈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