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字)는 인립(仁立)이고 고려(高麗) 희종(熙宗) 3년(年) 서기 1207년 출생하고 관직(官職)은 문하시중(門下侍中) 지도첨의사(知都僉議事) 상장군(上將軍) 판전리사(判典理司) 사(事) 거쳐 중찬(中贊)으로 치사(致仕)하였으며 고려 중엽 왕실의 권위가 해이해저 정중부, 최충헌 임유무 등의 무단정치로 고려국의 왕정이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권신(權臣) 최의(崔竩)를 토벌(討伐)하고 홍문계(洪文系)와 모의하여 송염, 송분으로 하여금 역신(逆臣) 임유무(林惟茂)를 목베어 왕정을 복고하였자. 원종(元宗)을 몽고(蒙古)에서 맞아들여 왕정복고에 공을 세워 공신에 책록(策祿)되어 추성익재보리동덕좌명공신(推誠翊載輔理同德佐命功臣)의 호(號)가 내려졌고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에 피봉(皮封)되었다. 식읍(食邑) 1천호(千戶)의 철권(鐵券)을 내리고 운대(雲臺)에 도상(圖像)되었다. 충렬왕 2년 기축 서기 1289년 졸하였다. 시호(諡號)는 정렬(貞烈)이며 시양사(始陽祀)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