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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흥안씨] 안병찬(安秉瓚)

작성일 : 2017-06-26 15:40

1854(철종 5)1921 ()는 치규(穉圭), ()는 규당(規堂). 홍주(洪州) 출신. 1894(고종 31) 홍주 교임(洪州校任)이 되고, 이듬해 단발령(斷髮令)이 내리자 김한복(金漢福) 등과 의병을 일으켰다가 체포되어 재판장 이범진(李範晋)의 심문에 조리 있는 답변을 하여 석방된 후 홍릉 주사(洪陵主事)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했다. 1905(광무 9) 법부 주사(法部主事)로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대궐에 들어가 통곡했고, 이듬해 민종식(閔宗植)과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가 투옥, 9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변호사가 되어 1909(융희 3) 안중근(安重根)의 공판에 무료로 변호를 담당, 3.1운동 후 만주로 망명, 안동현(安東縣)에서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을 조직하고 총재가 되었으나 체포되어 평양(平壤)에 이송되었다. 옥고 중 병으로 보석이 되자 만주 관전현(寬甸縣)으로 탈출, 홍통구(弘通溝)에서 김승만(金承萬) 등과 대한청년 연합회를 결성, 총재로서 많은 독립단원을 훈련시키고, 1920년 일본군에 다시 체포되어 관전현의 지사(志士) 황조안(黃祖安)의 알선으로 석방되어 상해(上海)로 가서 임시정부 법무차장에 임명되었다. 1963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單章)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