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극함(安克諴): ?~1641(인조 19) 자(字)는 자성(子誠), 병조 참판(兵曹參判) 준(浚)의 아들. 1625년(인조 3) 무과(武科)에 급제,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이 입(李 立)과 함께 소위포(少爲浦)에서 항전, 많은 전공을 세웠다. 이어 명나라 장군 모문룡(毛文龍)을 도와 활약, 그 공으로 훈련원 부정(訓練院副正)이 되고, 모문룡의 주청으로 명나라로부터 의병장의 은자패(銀子牌)와 1천 석의 쌀을 하사 받았다. 1641년 최효일(崔孝一)․차예량(車禮亮) 등과 함께 청제(淸帝)를 죽이고 명나라를 도울 것을 모의, 먼저 최효일․차예량 두 사람을 등주(登州)에 보내고 후에 도강(渡江)하려다가 조선인으로 청나라에서 벼슬하고 있던 정명수(鄭明壽)에게 발각, 서울로 잡혀와 처형(處刑)되었다. 병조 참의(兵曹參議)에 추증(追贈), 의주(義州)의 백마산성사(白馬山城祠)와 현충사(顯忠祠)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