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8(중종 13)~1548(명종 3) 자(字)는 경응(景應), 부호군(副護軍) 안담(安燂)의 아들. 박영(朴英)의 문인. 1544년(중종 39)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검열(檢閱)․주서(注書)․정자(正字)를 역임했다. 1548년(명종 3) 이기(李芑)․정순붕(鄭順朋)이 을사사화(乙巳士禍 : 1545)를 일으켜 현신(賢臣)들을 많이 숙청한 사실을 사관(史官)으로서 그 정상을 빠짐없이 시정기(時政記)에 적어 놓은 것이 누설되어 그들의 무고로 사형(死刑)을 당하고 가산이 적몰(籍沒)되었다가 1568년(선조 1) 신원(伸寃)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