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0(세조 6)~1521(중종 16) 자(字)는 언보(彦寶), 호(號)는 영모당(永慕堂), 시호(諡號)는 정민(貞愍), 사예(司藝) 안돈후(安敦厚)의 아들. 1480년(성종 11) 성균시(成均試)를 거쳐 1481년 친시문과(親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이듬해 사관(史官)에 보직되고, 1499년(연산군 5)에 사성(司成)으로「성종실록(成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그후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를 지내고, 1507년(중종 2) 이 과(李 顆)의 옥사(獄事)를 다스려 정난공신(定難功臣) 3등이 되었다. 1509년 예조 참판(禮曹參判)으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대사간(大司諫)을 지내고, 호조와 형조․공조의 판서(判書)를 거쳐 1515년 이조 판서(吏曹判書), 1518년 좌찬성(左贊成)에 이어 이조 판서, 같은 해 우의정(右議政)에 올랐다. 1519년 좌의정으로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영의정 정광필(鄭光弼)과 함께 화(禍)를 입게 된 유신(儒臣)들을 힘써 구출하려다가 도리어 파직되고, 이듬해 작위(爵位)를 빼앗겼다가 1566년 추복(追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