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8~1929) 초명(初名):우중(瑀重), 자(字):중거(仲擧), 호(號):지정(之亭), 광무7년(1903)에 법관양성소 교관(法官養成所 敎官)으로 등용되어 사범학교 교장(師範學校 校長)을 역임하고, 1907년에 수학원 교관 겸 동궁사부(修學院 敎官 兼 東宮師傅)로 승진(陞進)되었다. 그 후 동궁(東宮)이 일본에 억류(抑留)되고 국정이 위미(萎靡)함을 보자 사직(辭職)을 고했다. 고종황제(高宗皇帝)가 어구마일필(御廐馬一匹)을 하사(下賜)하고, 손수 소귀정 삼자(疏歸亭 三字)를 써서 주었으니 곧 이소(二疏)가 같다는 뜻이다. 동궁(東宮)이 영친왕(英親王)으로 강칭(强稱)된 후 귀국(歸國)하면 선생(先生)을 비원(秘苑)으로 불러 1~2일식 동숙하면서 통한(痛恨)의 눈물을 지웠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