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456)은 1423년(세종5년)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사재직장(司宰直長)․병조좌랑(兵曹佐郞)․종부시윤(宗簿寺尹)등을 거쳐 대사헌(大司憲)이 되었다. 사은부사(謝恩副使)․주문사(奏聞使)로 두차례 명나라에 다녀왔고, 단종1년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가 되었으나,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안평대군(安平大君)의 일파로 몰려 양산(梁山)에 유배, 사사(賜死)되었다. 1791년(정조15년)에 왕명으로 직첩이 회복되고 장릉(莊陵)에 배향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