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9 16:57
1670 (현종 11) ~ 1717 (숙종 43) 자는 백우(伯雨), 호는 북헌(北軒), 시호는 충문(忠文),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만기(萬基)의 손자, 호조 판서(戶曹判書) 진귀(鎭龜)의 아들. 서인(西人)으로서 1689년(숙종 1)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그 집안이 화를 입어 그도 여러 번 유배되었으나 갑술옥사(甲戌獄事 : 1694)로 풀려나왔고, 서인이 다시 노론(老論)․소론(少論)으로 갈라자지 노론(老論)에 속하여 1697년(숙종 23) 소론(少論)의탄핵으로 한때 유배당했다. 시재(時才)가 뛰어나 명망이 높았으며 종조부(宗祖父) 만중(萬重)이 지은 소설「구운몽(九雲夢)」과「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를 한문으로 번역했다. 후에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