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9 16:42
1637 (인조 15) ~ 1692 (숙종 18)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시호는 문효(文孝), 생원(生員) 익겸(益兼)의 유복자(遺腹子). 1665년(현종 6)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장원, 정언(正言)․교리(校理)를 거쳐 1671년(현종 12) 암행어사(暗行御史)가 되어 경기․삼남(三南)의 진정(賑政)을 조사했다. 이어 동부 승지(同副承旨)가 되었으나 1674년 인선왕후(仁宣王后)가 죽어 자의 대비(慈懿大妃) 복상문제로 서인(西人)이 패하자 관직을 삭탈당했다가 다시 등용되어 1679년(숙종 5) 예조 참의, 1683년(숙종 9) 공조판서, 1685년 홍문관 대제학이 되었다. 1689년(숙종 15) 박진규(朴鎭圭)․이윤수(李允修) 등의 탄핵으로 남해(南海)에 유배되어 이곳에서소설「구운몽(九雲夢)」을 집필했으며, 전문을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문학관을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