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9 10:52
1876 (고종 13) ~ 1949 아명(兒名)은 창암(昌巖), 초명은 구(龜), 창수(昌洙), 호는 백범(白凡), 초호는 연하(蓮下), 순영(淳永)의 아들. 15세에 학자 정문재(鄭文哉)에게 한학을 배웠다.
1893년(고종 30) 동학(東學)에 입교, 이듬해 해주에서 동학혁명(東學革命)을 지휘하였고, 일본군에 쫓겨 1895년 만주로 피신했다가 1896년 귀국하여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원수를 갚는다고 일본 육군 중위 쓰찌다(土田壤亮)를 살해, 체포되어 복역중 1898년(광무 2) 탈옥, 1903년(광무 7) 기독교에 입교했다.
3, 1운동 후 상해로 망명하였으며, 상해 임시정부 경무국장, 내무총장, 국무령(國務領)을 역임하면서 1928년 이시영(李始榮), 이동녕(李東寧)과 한국 독립당(韓國獨立黨)을 조직, 당수가 되어 항일 무력 활동을 지휘했다. 1933년 남경(南京)에서 장개석(蔣介石)을 만나 한국인 무관학교 설치와 대일 전후방책을 협의했고, 1935년 한국 국민당(韓國國民黨)을 조직했으며, 1944년 임시정부편 광복군 낙하산 부대를 편성하여 훈련을 실시하다가 8, 15해방으로 귀국하여 모스크바 삼상회의(三相會議) 성명을 반대하여 반탁운동(反託運動)을 전개했다. 1948년 남한에서만의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UN의 결의에 반대하여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협상(南北協商)을 제창, 북한에 가서 정치회담을 열었으나 실패했다. 그 후 정부 수립 육군 소위 안두희(安斗熙)에게 암살당했다. 국민장으로 효창 공원에 안장, 1962년 대한민국 건구공로훈장 중장(重章)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