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6 13:31
1212 (강종 1) ~ 1300 (충렬왕 26) 자는 본연(本然), 시호는 충렬(忠烈), 신라 경순왕의 후손, 효인(孝印)의 아들. 고종 때 음보(蔭補)로 16세에 산원(散員)이 되어 식목녹사(式目錄事)를 겸하고, 감찰어사(監察御史)를 거쳐 서북면 병마판관(西北面兵馬判官), 형부 상서(形部尙書), 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 등을 지냈다.
1270년에 장군 배중손(裴仲孫) 등이 승화후(承化候) 온(溫)을 왕으로 추대하고 삼별초(三別抄)를 이끌고 난을 일으키자, 원나라 장군 흔도, 홍다구와 함께 삼별초를 쳐서 난을 완전히 평정했다. 그후 시중(侍中)이 되고 원(元)나라에 들어가 세조(世祖)로부터 금안(金鞍) 등을 하사받고, 돌아올 때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의 작위를 더 받았다.
1274년 충렬왕이 즉위하자 원나라에서 합포(合浦 : 마산)에 정동행성(征東行省)을 두고, 일본을 정벌할 때 중군장(中軍將)으로 출정, 2만 5천명의 여원(麗元) 연합군과 함께 쓰시마도(對馬島)를 친 다음 본토로 향하는 도중 풍랑으로 패하고 돌아왔다. 1281년(충렬왕 7) 원나라가 다시 일본정벌을 할 때 고려군 도원수로 종군, 일본 이끼도(壹岐島)를 거쳐 하까다(博多)에 이르러 승리를 거두었으나 태풍(颱風)과 적의 기습을 당하여 참패하고 돌아와서, 벼슬을 사양하여 추충정난정원공신(推忠靖難定遠功臣)에 삼중대광(三重大匡), 첨의중찬(添議中贊), 판전리사사(判典理司事), 세자사(世自師)로서 치사(致仕)하고 상락군개국공(上洛郡開國公)에 봉해졌다. 충선왕 때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