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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김씨] 김홍집(金弘集)

작성일 : 2017-06-15 16:06

1842(憲宗8)1896(建陽1)  초휘(初諱) 굉집(宏集), ()는 경능(敬能), ()는 도원(道園), 계림군(雞林君) 김균(金稛)16세손이며, 이조참판(吏曹叅判) 영작(永爵)3, 1868(高宗5) 정시문과병과(庭試文科丙科)로 급제, 광양현감(光陽縣監)을 거쳐 1880년 수신사(修信使)가 되어 일본(日本)에 다녀왔다. 이어 중국인(中國人) 황준헌(黃遵憲)의 조선책략(朝鮮策略)을 소개(紹介)하여 개화정책(開化政策)을 추진(推進)한 공()으로 예조참판(禮曹叅判)에 승진(昇進)했다. 그러나 척사운동(斥邪運動)이 전국(全國)으로 전암(展闇)되니 책을 소개(紹介)한 책임(責任)을 물어 사직(辭職)했다. 그 뒤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등 국제문제(國際問題)에 부딛친 정세(政勢)에 다시 기용(起用)되어 미(),(),(),등의 수호조약(修好條約)의 부사(副使)로서 또한 제물포조약(濟物浦條約)체결(締結)의 부관(副官)으로서 외교(外交)수완(手腕)을 발휘(發揮) 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1884년 예조판서(禮曹判書),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역임(歷任)하고 갑신정변(甲申政變)이 일어나자 우좌의정(.左議政)등으로 전권대신(全權大臣)이 되어 한성조약(漢城條約)을 체결(締結) 그 직()을 사임(辭任)했다. 1888년 경주(慶州) 숭혜전(崇惠殿)에 문무왕(文武王)을 병향(倂享)하는 일을 주청(奏請)하여 윤허(允許)를 받았다. 경주부윤(慶州府尹) 김철희(金喆熙)에게 묘우(廟宇)를 중건(重建)하게 하였다. 1894년 동학혁명(東學革命)이 일어나자 제 1차 김홍집(金弘集) 내각(內閣)을 조직(組織) 총리대신(總理大臣)이 되었다. 청일전쟁(淸日戰爭)후 제2차 내각(內閣)을 조직(組織)하였으나 1896년 이후(以後) 친로세력(親露勢力)의 팽배로 다시금 무너지며 많은 대신(大臣)들이 피살(被殺)되고 그도 광화문(光化門)에서 난도(亂徒)들에게 살해(殺害)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