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5 16:05
1808(純祖8)~1859(哲宗7) 자(字)는 구여(九如), 호(號)는 석세(石世), 시호(諡號)는 문정(文貞), 계림군(雞林君)의 16세손이며 증좌찬성(贈左贊成) 영수(永受)의 아들
1827년(純祖27) 문과에 급제하고 승정원(承政院) 가주서(假注書), 설서문학(說書文學)등을 거쳐 순조(純祖)33년에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淸)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대사성(大司成), 이조참의(吏曹叅議),를 거쳐 1846년(憲宗12) 황해도(黃海道) 관찰사(觀察使)로 재임시에 김대건(金大建) 신부(神父)를 체포(逮捕)하였으며 의금부사동지성균관사(義禁府事同知成均館事)를 역임했다. 1848년(顯宗15) 개성용흥리(開城龍興里)에서 대안군(大安君) 은열(殷說) 묘비문(墓碑文)을 썼다. 저서(著書)로는 석세유고(石世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