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5 14:11
1635(仁祖13)~1691(肅宗17) 자(字)는 대옥(大玉), 호(號)는 평옹(萍翁), 풍애(楓崖)이다. 계림(雞林)군(君) 김균(金稛)의 10세손, 팔도도원수(八道都元帥) 충익공(忠翼公) 명원(命元)의 4세손, 경천군(慶川君) 야당공(野塘公) 남중(南重)의 3남이다. 1657년(孝宗8)에 진사(進士)가 되고 1667년(顯宗8) 음보(蔭補)로 빙고별제(氷庫別提)를 거쳐 후성현감(厚城縣監)등 여러 외직(外職)에 임명(任命)되었으나 부임(赴任)하지않았다. 1667년(肅宗4) 원주목사(原州牧使)로 갔을 때 경천묘(敬天廟)의 경순대왕(敬順大王) 영정(影幀)의 견소(絹素)가 삭아지고 객색(客色)이 본바탕을 잃게 되므로 다시 모사(模寫)하고 대웅전(大雄殿) 남측(南側)에 녹봉(祿俸)을 털어 신전(新殿)을 새로지어 이봉(移奉)하였다. 박학다식(博學多識)하였고 글씨를 잘 썼으며, 문집에《풍애유고(楓崖遺稿)》, 저서에《인감(人鑑)》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