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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김씨] 김명원(金命元)

작성일 : 2017-06-15 12:14

1534(中宗29)~1602(宣祖35)(忠翼公)  자(字)는 응순(應順), 호(號)는 주은(酒隱), 시호(諡號)는 충익(忠翼), 경림부원군(慶林府院君), 계림군(雞林君) 김균(金稛)의 7세손, 대사헌(大司憲) 김만균(金萬鈞)의 2남, 이황(李滉)의 문인(文人)으로 1558년(明宗13) 사마시(司馬試)에 급제(及第)하고, 1561년(明宗16) 식년문과갑과(式年文科甲科)에 장원급제(壯元及第)하시니 할아버지 천령(千齡), 아버지 만균(萬鈞), 형님 경원(慶元)도 모두 문과(文科) 장원급제(壯元及第)를 하였으니 개국이래(開國以來) 삼대(三代)가 장원(壯元)하기는 처음이라 하였다. 벼슬은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가 되고 저작박사(著作博士)로 승진(昇進)하였으나 이량(李樑)의 미움을 사 파직(罷職)되었으나 복직(復職)되고 선조원년(宣祖元年) 함경도(咸鏡道)의 군무상황(軍務狀況)을 두루 살펴보고 요해지(要害地)의 방비(防備)등을 자세하게 보고(報告)했다. 다음해에 경성부사(鏡城府使)가 되고 그 뒤 동래부사(東萊府使), 판결사(判決事), 정주부사(定州府使), 병조(兵曹)참판(叅判)을 역임(歷任), 1587년에 우참찬(右參贊)에 승진(昇進)하였다. 1589년(宣祖22) 정여립(鄭汝立)의 난(亂)을 평정(平定)한 공(功)으로 평난공신(平難功臣) 3등에 책록(策錄)되고 경림군(慶林君)에 봉(封)해졌다.

1592년(宣祖25)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순금사(巡禁使)가되었다가 팔도병마도원수(八道兵馬都元帥), 1597년(宣祖30)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나자 병조판서(兵曹判書)로서 유도대장(留都大將)을 겸임(兼任)하였고, 1601년에 부원군(府院君)으로 진봉(進封)되고 좌의정(左議政)에 이르렀다. 병서(兵書)와 궁마(弓馬)에 능했다. 배위(配位)는 정경부인(貞敬夫人) 청주한씨(淸州韓氏) 관(綰)의 따님이다. 묘(墓)는 고양시관산동묘좌(高陽市官山洞卯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