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5 12:11
1534(中宗29)~1592(宣祖25) (月庵公) 자(字)는 덕원(德元), 호(號)는 월암(月庵),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鐘)의 21세손, 내금위어모장군(內禁衛禦侮將軍) 김숙린(金淑璘)의 아들, 1570년(宣祖3) 무과급제(武科及第)하고 벼슬은 훈련원봉사(訓練院奉事)를 지낸 후 향리(鄕里)에 거주(居住)하였다. 1592년(宣祖25)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의병(義兵)을 일으켰다. 당시(當時) 경주부(慶州府)의 지방관리(地方官吏)들이 도망(逃亡)하자 조정(朝廷)의 부름을 받고 의병도대장(義兵都大將)이 되어 소모관(召募官)들과 경주(慶州)를 약탈(掠奪)하려는 왜병(倭兵)을 물리치고 울주계연(蔚州鷄淵)에서 왜(倭)의 북상(北上)하는 적(敵) 500기병(騎兵)과 맞서 싸우다가 8월5일 전사(戰死)했다. 당상관(堂上官)에 증직(贈職)되고 1758년(英祖34)에 참판(叅判)으로 추증(追贈)되었다. 배위(配位)는 오천정씨(烏川鄭氏)이며 궁기(宮基)의따님이다. 묘(墓)는 선도산해좌(仙桃山亥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