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5 12:03
1486(成宗17)~1521(中宗16) (冲庵公) 자는 원충(元冲), 호는 충암(冲庵), 시호(諡號)는 문간(文簡), 판도판서공(版圖判書公) 김장유(金將有)의 7세손 정언(正言) 효정(孝貞)의 2남이다. 1504년(燕山10)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合格), 1507년(中宗2)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장원급제(壯元及第) 정언(正言)을 거쳐 순창군수(淳昌郡守)로 담양부사(潭陽府使) 박상(朴祥)과 함께 폐비(廢妃) 신씨(愼氏)의 복위(復位)를 상소(上疏)했다가 보은(報恩)의 함림역(含琳驛)에 유배(流配)되었다. 1516년(中宗11)에 풀려 나와 응교서한(應敎書翰)에 임명(任命)되었으나 부임(赴任)하지 않았고 뒤에 부제학(副提學), 동부승지(同副承旨), 도승지(都丞旨),를 거쳐 이조참판겸홍문관제학(吏曹叅判兼弘文館提學) 대사헌(大司憲)을 지내고 뒤에 형조판서(刑曹判書)로서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을 겸임(兼任)하였다. 조광조(趙光祖)와 더불어 지치주의(至治主義) 실천(實踐)을 위해 미신타파(迷信打破), 향촌(鄕村)의 상호부조(相互扶助)를 위한 향약(鄕約)의 전국적(全國的) 시행(施行)등 많은 업적(業績)을 남겼다. 1519년(中宗14) 기묘사화(己卯士禍)때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투옥(投獄)되었다가 금산(錦山)에 장배(杖配), 다시 제주(濟州)에 안치후(安置後)에 사사(賜死)되었다. 시문(詩文)은 물론(勿論) 그림에 능하여 새 짐승 등을 잘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