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5 12:01
1465(世祖11)~1532(中宗27) (恭節公) 자(字)는 옥이(玉耳), 호는 공절(恭節), 계림군(雞林君) 김균(金稛)의 현손(玄孫), 병판공(兵判公) 김중성(金仲誠)의 2남 신민(新民)의 손(孫), 태경(泰卿)의 2남, 1495년(燕山1)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고 벼슬은 사관(史官)을 지내고 1507년(中宗2) 사간(司諫)을 거쳐 장령(掌令),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를 역임(歷任)한 후 1519년(中宗14)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누소직간(累疏直諫)으로 폄적(貶謫)되었다가 풀려났다. 1523년 진향사(進香使)로 명(明)나라에 다녀왔다. 육조참판(六曹叅判)를 두루 지냈고 1526년(中宗21)에 형조판서(刑曹判書)가 되었고 한성판윤(漢城判尹), 공조판서(工曹判書), 대사헌(大司憲), 등을 역임(歷任)한 후 좌참찬(左參贊)이 되었으며 좌찬성(左贊成)에 까지 오르고 재임중(在任中)에 세상을 떴다. 성품(性品)이 청렴(淸廉) 솔직(率直)했다는 평이다. 배위(配位)는 정경부인(貞敬夫人) 경주이씨(慶州李氏) 소(訴)의 따님이나 일찍 돌아가시고, 계배(繼配) 정경부인(貞敬夫人) 원주이씨(原州李氏) 정원(廷源)의 따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