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5 12:00
1418(太宗8)~1495(燕山1) (恭平公) 자(字)는 택부(澤夫), 호(號)는 퇴제(退齊), 태사공(太師公) 김인관(金仁琯)의 11세손, 소윤공(少尹公) 근(根)의 4남, 1447년(世宗29)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에 임명(任命)되어 감찰언정(監察言正)등을 거쳐 1457년(世祖3)에 평양소윤(平壤少尹)이 되었다. 1465년(世祖11) 에 승문원판사(承文院判事), 이어 대사성(大司成)을 역임(歷任), 호조참의(戶曹叅議)에 전직(轉職)되어 성절사(聖節使)로 명(明)나라에 다녀오고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를 거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었다. 형조참판(刑曹參判), 공조참판(工曹叅判)으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明)나라에 다녀오고 대사헌(大司憲),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를 거쳐 정조사(正朝使)로 명(明)나라에 다녀왔다. 1483년(成宗14) 한성좌윤(漢城左尹), 그 후 행첨지중추부사(行僉知中樞府事)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를 지내고 70세로 치사(致仕)를 청(請)했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배위(配位)는 정부인(貞夫人) 청주한씨(淸州韓氏) 서룡(瑞龍)의 따님이다. 묘(墓)는 상촌공묘역 안산무좌(桑村公墓域 案山戊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