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5 11:45
1415(太宗15)~1449(世宗31)(佐郞公) 호(號)는 퇴와(退窩), 태사공(太師公) 인관(仁琯)의 11세손, 소윤공(少尹公) 근(根)의 2남, 글씨를 잘 썼으며 세종(世宗) 17년경에 음보(蔭補)로 입사(入仕)하여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에 임하면서 내외관직(內外官職)의 비위(非違)를 철저(徹底)히 감찰(監察)하여 세종(世宗)임금이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이룩하는데 일익(一翼)을 담당(擔當)했으며 잠시 경상도사(慶尙都事)의 임무(任務)를 충실(充實)히 했으며, 다시 병조(兵曹),호조좌랑(戶曹佐郞)을 역임(歷任)했다. 배위(配位)는 숙부인(淑夫人) 삼척김씨(三陟金氏) 계(啓)의 따님이다. 묘는 신림면(新林面)에서 고양시대자동갑좌(高陽市大慈洞甲坐)로 1970년5월10일에 천묘봉안(遷墓奉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