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5 11:41
1401(太宗1)~ ? (判尹公) 초휘(初諱)는 천민(天民), 자(字)는 덕지(德之), 계림군(雞林君) 김균(金稛)의 손(孫), 병판공(兵判公) 김중성(金仲誠)의 3남, 1435년(世宗17) 진사(進士), 다음해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였다.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 자헌대부(資憲大夫) 한성판윤(漢城判尹)에 이르렀다. 단종(端宗)을 폐위(廢位)함은 불가(不可)하다고 직언청간(直言請諫)하여 상주목사(尙州牧使)로 좌천(左遷)되고 부임(赴任)한지 몇달, 정사(政事)를 보는 이들의 화합(和合)이 일지 못함을 외로워하며 생을 마쳤다. 청백리(淸白吏)로 선임(選任) 되었다. 배위(配位)는 남양홍씨(南陽洪氏) 우성(禹成)의 따님이나 일찍 돌아가시고 계배(繼配) 장수황씨(長水黃氏)는 보신(保身)의 따님이며, 묘(墓)는 청원군미원리간좌(淸原郡米院里艮坐), 기적비(紀績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