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5 11:36
1355(恭愍王4) ~ ? (樹隱公) 자(字)는 통경(通卿), 호(號)는 수은(樹隱),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鐘)의 15세손, 판도정랑(版圖正郞) 서인(瑞仁)의 2남, 출생(出生)때부터 남다른 바가 있었으며 많은 서책(書冊)을 읽었다. 일찍 과거(科擧)에 급제(及第)하고 관직(官職)에 임(臨)했는데 깊은 사려(思慮)와 관대(寬大)하게 처리하였으며 벼슬은 봉익대부예의판서(奉翊大夫禮儀判書)에 이르렀는데 나라가 그릇되어감을 보고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갔다. 정포은(鄭圃隱) 등 팔은(八隱)과 우의(友誼)가 좋았으며 더불어 우국(憂國)하였다. 고려(高麗)의 운(運)이 다했음을 보고 고려(高麗)에 대하여 절의(節義)를 지킬 것을 임원미(林元味)와 굳게 약속(約束)하고 두문동(杜門洞)에 은거(隱居)하였다. 이성계(李成桂)가 여러차례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으므로 남원(南原)으로 귀양 보냈다. 포혈(包趐)과 호촌(壺村)에 들어가 목가(木家)를 짓고 살았다. 이름하여 두동(杜洞):두곡(杜谷)이라 하였다. 강원도(江原道) 정선(旌善)산골에 칠현(七賢)의 유적비(遺蹟碑)가 있다. 태종(太宗)때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증직(贈職)되고 시호(諡號) 문민(文敏)을 주었다. 남원(南原)에 표절사(表節祠), 남원(南原) 두곡(杜谷)에 단소(壇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