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5 11:27
1353(恭愍王2)~ ? (杜溪公) 자(字)는 선경(善卿), 호(號)는 두계(杜溪),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鐘)의 15세손 판도정랑(版圖正郞) 서인(瑞仁)의 장남(長男), 공민왕(恭愍王)때 봉익대부이의판서평장사(奉翊大夫吏議判書平章事)를 지냈다. 1361년 홍건적(紅巾賊)이 개경(開京)에 침입(侵入)하므로 왕이 피난(避難)길에 이천(利川)에 당도(當到) 했을 때 개경(開京)이 점령(占領)되었음을 듣고 정세운(鄭世雲)을 총병관(摠兵官)으로 삼고 토벌(討伐)케 하였다. 김득배(金得培), 이방실(李芳實)이 개경(開京)을 수복(收復)했는데 어지러운 개경(開京)을 재건(再建)하고 수습(收拾)하는데 공(功)을 세웠다. 고려(高麗)가 운명(運命)을 다하자 아우 충한(冲漢)과 임선미(林先味)와 더불어 만수산(萬壽山)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갔다. 그 후 두류산(頭流山:智異山) 서쪽에 피적(被謫)하였는데 목가(木家)를 짓고 살았는데 이로 인(因)하여 두곡(杜谷)의 이름이 여기서 연유(緣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