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5 11:20
1346(忠穆王2)~1430(世宗12)(府使公) 자(字)는 치당(穉堂), 문선공(文宣公) 김요(金瑤)의 5세손, 감역(監役) 천응(天應)의 2남으로 등과후(登科後) 찰방(察訪)을 시작(始作)으로 순문사가 되면서 왜구(倭寇)의 약탈(掠奪)이 심한 동해안(東海岸)을 순행(巡行)하며 격려(激勵)하였다. 1382년3월에는 왜구(倭寇)가 평해(平海), 삼척(三陟), 울진(蔚珍), 우계(羽溪),등의 해안(海岸)을 덥치고 6월에는 경산(慶山), 대구(大邱)등 내륙(內陸)에 침투(浸透)하였을 때 울주부사(蔚州府使)가 되었고 잘 방어(防禦)했다. 이후(以後) 여러 관직(官職)을 했으나 알 수 없고 이후(以後) 고향(故鄕) 양주(楊州)에 가지 않고 영일군(迎日郡) 신광에 살게 되었다. 배위(配位)는 정부인(貞夫人) 여산송씨(礪山宋氏) 근수(根守)의 따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