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9(高宗26)~1311(忠宣王3) (忠宣公) 시호(諡號)는 충선(忠宣)이며 대안군(大安君) 은열(殷說)後 문간공경손(文簡公 慶孫)의 3남 충열왕(忠烈王)때의 공신(功臣) 1255년(高宗42) 18세에 석능직(碩陵直)이 되어 내시(內侍)에 적(籍)을 두었다가 감찰사(監察使)를 거쳐 순경왕후(順敬王后)의 종제(從弟)로서 총애(寵愛)를 받아 대장군(大將軍)이 되었다. 친하던 김문비(金文庇)가 죽자 여자관계(女子關係)로 탄핵(彈劾)을 받고 귀양갔다가 풀려 우승지(右丞旨), 부지밀직사첨의참리(副知密直司僉議叅理), 시랑찬성사(侍郞贊成事) 중찬(中贊) 등을 지냈다. 왕이 원(元)나라에 들어갔을 때 왕을 대신(代身)하여 행성(行省)을 잘 처리했다. 추성익대공신(推誠翊戴功臣)이 되고 삼사사(三司事) 계림부원군(雞林府院君)에 봉(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