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隋城伯) 태자(太子) 김일(金鎰)의 11세손, 김남미(金南美)의 4남, 몽고(蒙古)가 고려(高麗)를 복속(服屬) 시키자 일본정벌(日本征伐)을 요구(要求), 그 준비(準備)에 몰두(沒頭)하고 삼별초군(三別抄軍)의 저항(抵抗)으로 고려(高麗)가 무척 어려운 때 백성(百姓)을 돌볼 수 없는 시기(時期)에 부임(赴任)한 곳의 민심(民心)을 바로잡아 민생(民生)을 안정(安定)시키고 기강(紀綱)을 바로잡아 잘 다스려 삼중대광(三重大匡:鄕職一品) 수성백(隋城伯)에 봉(封)해졌다. 배위(配位)는 예산박씨(禮山朴氏)이며 시중 원익(侍中 元翊)의 따님이다. 묘(墓)는 영변군 입원면 명당리 옥수동 후록(寧邊郡立元面明堂里玉水洞後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