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5 10:58
호(號)는 설당(雪堂)이며, 김부식(金富軾)의 손자(孫子), 문신(文臣) 김돈중(金敦中)의 아들, 일찍이 문학(文學)에 재능(才能)을 보여 1194년,(明宗24) 문과(文科)에 장원급제(壯元及第), 직한림원(直翰林院)을 거쳐 고종(高宗) 초에 시랑(侍郞)으로 각도(各道)의 찰방사(察訪使)가 되어 민정(民情)을 시찰(視察)했다. 고종(高宗)5년 거란병이 침입(侵入)하자 조충(趙冲)의 후임(後任)으로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가 되어 청백(淸白)과 애민(愛民)으로 이름이 높았다. 병마사(兵馬使) 김취려(金就礪)의 미움과 녹사(錄事) 노인수(盧仁綏)의 참소를 받아 한남(漢南:현 수원)으로 귀양갔다. 그 후손을 수소문(搜所聞)하였으나 찾지 못했다. 시문(詩文)에 능(能)하여 보조국사비명(普照國師碑銘)을 찬(撰)하고 대(竹) 그림을 잘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