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5 10:48
1075(文宗29)~1151(毅宗5) 경순대왕(敬順大王)의 8세손(世孫), 근(覲)의 아들, 자(字)는 입지(立志), 호(號)는 뇌천(雷川), 부필(富弼), 부일(富佾)의 아우이다.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안서대도호부(安西大都護府)․해주(海州))의 사록(司祿)․참군사(參軍事)가 되고, 직한림(直翰林), 우간의(右諫議)를 거쳐 중서사인(中書舍人)이 되었다. 1122년(仁宗元年) 이자겸(李資謙)의 례(禮)에 벗어난 행위(行爲)를 시정(是正)케 하고 예종실록(睿宗實錄)을 수찬(修撰)하였다. 예종(睿宗)12년에 묘청(妙淸)의 서경천도설(西京遷都說)을 중지(中止)케 하고 묘청(妙淸)이 서경(西京)에서 반란(叛亂)을 하자 진압군(鎭壓軍)의 원수로 중군장(中軍將)이 되어 난(亂)을 일으키자 평정(平定)하고 수충정난공신(輸忠靖難功臣)의 칭호(稱號)를 받았다.
또 1145년(仁宗23)에 삼국사기(三國史記) 50권(卷)을 편찬(編纂)하였다. 그는 의종(毅宗) 즉위년(卽位年)에 낙랑개국후(樂浪開國侯)에 봉해지고 인종실록(仁宗實錄)을 주재(主宰)하였다.
중서령(中書令)에 추증(追贈)되고 시호(諡號)는 문열(文烈) 인종묘정(仁宗廟廷)에 배향(配享)되었다. 김문열공문집(金文烈公文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