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5 10:19
재위(742~764) 신라(新羅) 35대이고 김씨계(金氏系) 20대 왕이다. 휘(諱)는 헌영(憲英)이고 효성왕(孝成王)의 동모제(同母弟)이다. 효성왕(孝成王)이 아들이 없으므로 태자(太子)로 삼았던 헌영(憲英)이 왕위(王位)를 계승(繼承)하였다. 비(妃)는 이찬(伊湌) 순정(順貞)의 딸이다. 왕은 즉위(卽位) 초부터 왕권(王權) 강화(强化)를 위해 관제(官制)를 정비(整備)하고 과감(果敢)히 개혁(改革)을 시도(試圖) 했다. 전문(專門) 학자(學者)와 관료(官僚)를 육성(育成)하는 등 유교정치(儒敎政治) 구현(具顯)에 토대(土臺)를 마련했다. 이 정책(政策)에 반기(反旗)를 든 상대등(上大等) 김은인(金恩仁)은 천재지변(天災地變)의 빈번(頻繁)함을 빌미로 극렬반대(極烈反對)했다. 757년(왕16) 지방행정조직(地方行政組織)인 구주오소경(九州五小京)과 중앙관제(中央官制)를 중국식(中國式) 한자(漢字)로 개정(改正)하는 등 제도개혁(制度改革)을 단행(斷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