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3 14:34
1612 (광해군 4) ~ 1699 (숙종 25) 자는 시회(時會), 호는 석담(石潭), 판서 협(挾)의 손자, 사어(司禦) 근중(謹中)의 아들. 1642년(인조20) 진사(進士)가 되고, 1649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정언(正言)․사인(舍人)․헌납(獻納)․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을 거쳐 1670년(현종 11) 호조판서에 이어 형조 판서(刑曹判書)가 되고 이듬해 동지사(冬至使)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74년 숙종(肅宗)이 즉위하자 예조 판서가 되고, 병조 판서․우의정․좌의정(左議政)을 지낸 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으로 남인(南人)이 실각되자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로서 영일에 부처(付處)된 뒤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풀려 나와 영의정(領議政)에 올랐다. 1694년 갑술옥사(甲戌獄事)로 삭출(削黜) 당한뒤 안치(安置)되 었다가 이듬해 전리(田里)에 방귀(放歸)되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