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3 14:15
1607 (선조 40) ~ 1637 (인조 15) 자는 효원(孝元), 시호(諡號)는 충렬(忠烈), 형조 참판(刑曹參判) 진기(盡己)의 아들. 1624년 진사(進士)가 되고, 음보(蔭補)로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건원릉 참봉(建元陵參奉)․빙고 별제(氷庫別提)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에 어머니를 모시고 강화(江華)로 피난, 수성(守城)을 위해 의병을 일으켰으나 이듬해 정월, 성이 함락되자 좌의정 김상용(金尙容)등과 함께 스스로 분사(焚死)했다.
이 소식을 들은 처(妻)와 누이동생은 목매어 자결, 아우 순열(順悅)․순경(順慶)은 전사(戰死)했다. 지평(持平)에 추증(追贈), 자손은 녹용(祿用)케 되었고, 뒤에 좌찬성(左贊成)에 추증, 강화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