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3 14:14
1604 (선조 37) ~ 1672 (현종 13) 자는 사성(思誠), 호는 탄옹(炭翁), 좌랑(佐郞) 득기(得己)의 아들. 1636년(인조 14) 천거로 대군 사부(大君師府)에 누차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고, 효종(孝宗) 즉위 후 특별 유시로 불렀으나 굳이 사양 했다.
1659년(효종 10)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윤선도(尹善道)가 예송문제(禮訟問題)로 생명을 걸고 서인을 공격하는 태도를 가상하다고 했다가 같은 서인의 규탄으로 파직, 낙향 도중 광주(廣州)의 선영(先塋)에 머물러 살았다.
1668년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공주(公州)에 돌아 갔다. 송시열(宋時烈)과 같은 기호학파(畿湖學派)로서 예론(禮論)에 밝았다. 좌찬성(左贊成)에 추증(追贈), 공주의 도산서원(道山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