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3 12:30
1572 (선조 5) ~ 1624 (인조 2) 자는 운경(雲卿), 호는 수은(睡隱), 근(近)의 8대손, 현(睍)의 아들. 1597년(선조30)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청환직(淸宦職)을 거쳐 1608년 경주 부윤(慶州府尹)에 승진, 1613년(광해군 5) 승지(承旨)로서 계축옥사(癸丑獄事)에 연루된 인목대비(仁穆大妃)의 동생 김 선(金 瑄)의 사형을 감형하라고 호소했다.
수원 부사(水原府使)․함경도 관찰사(咸慶道觀察使)․한성판윤(漢城判尹)․좌참찬(左參贊)을 지내고 1623년 병조 판서(兵曹判書)가 되어 권신(權臣) 이이첨(李爾瞻)에게 아부하지 않아 수차 탄핵을 받았다.
이해에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일어나 대신․고관들이 모두 도주했을 때 홀로 김 유(金 瑬) 등의 추천을 받고 조정에 불리어 대궐을 호위, 많은 공을 세웠으나 그의 유능함을 질시하는 반정공신(反正功臣)들의 무고로 양산(梁山)에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