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3 12:02
1569 (선조 2) ~ 1612 (광해군 4) 자는 여장(汝章), 호는 석주(石洲), 벽(擘)의 아들. 정철(鄭澈)의 문인. 과거(科擧)에 뜻이 없어 시주(詩酒)로 낙을 삼고 가난하게 살다가 여러 문신들의 추천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으나 끝내 취임하지 않았다.
강화부(江華府)에 갔을 때 많은 유생이 몰려오자 이들을 가르쳤고, 이정귀(李廷龜)가 대문장가로 알려진 명나라의 사신 고천준(顧天俊)을 접반하게 되어 문사를 엄선(嚴選)할 때 야인으로서 뽑혀 문명을 떨쳤다.
이에 앞서 1592년 임진왜란 때는 강경한 주전론을 주장했고, 광해군 초 권신(權臣) 이이첨(李爾瞻)이 교제를 청했으나 끝내 거절했다.
광해군 비(妃) 류씨(柳氏)의 아우 류희분(柳希奮) 등 척족(戚族)들의 방종을 궁류시(宮柳詩)로써 비방하자 광해군이 대노하여 시의 출처를 찾던 중, 1612년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에 연루된 조수륜(趙守倫)의 집을 수색하다가 그의 시를 발견, 친국(親鞫) 받을 뒤 유 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지평(持平)에 추증. 광주(光州)의 운암사(雲巖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