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2 11:59
1228 (고종 15) ~ 1311 (충선왕 3) 자는 회지(晦之), 호는 몽암(夢巖), 시호 (諡號)는 문청(文淸), 한림 학사 위(韙)의 아들. 문하 녹사(門下錄事)로 문과에 급제, 합문 지후(閤門祗候)로 전임 후 내외 벼슬 을 거쳐 충렬왕(忠烈王) 때 전리 총랑(典理摠郞)을 지내고 3도(道)를 다스려 폐단 을 일소했다.
후에 판위위시사(判衛尉寺事)가 되어 시관(試官)을 겸임, 권한공(權漢功)․백이정 (白頣正) 등 인재를 발굴, 지첨의부사(知僉議府事)로 치사(致仕)하고 찬성사(贊成事)가 더해졌다. 청렴결백했고, 만년에 선흥사(禪興寺)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