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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강씨] 강순(康 純)

작성일 : 2017-06-08 14:28

1390 (공양왕 1) 1468 (세조 13) 자는 태초(太初), 시호는 문정(文靖), 윤성(允成)의 증손. 음보(蔭補)로 무관(武官)에 등용되어 1450(세종 32) 조전 절제사(助戰節制使)에 오르고 1453(단종 1) 회령부사(會寧府使)를 거쳐 1456(세조 1) 판의주목사(判義州牧使)를 지낸 뒤, 이듬해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로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60년 판영북진도호부사(判寧北鎭都護府事)에 올라 여진(女眞) 정벌에 참가, 그 공으로 종성 절제사(鍾城節制使)가 되고,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진북장군(鎭北將軍)으로 어유소(魚有沼)와 함께 홍원(洪原)북청(北靑)만령(蔓嶺) 동지에서 적을 대파, 난 을 평정했다. 그 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 1등이 되고, 신천부원군(信川府院君)에 봉해졌다.

이해 건주위(建州衛) 이만주(李滿住)의 토벌 때 서정장군(西征將軍)으로 좌장군(左將軍) 어유소(魚有沼), 우장군 남 이(南 怡)와 함께 정예군 1만을 거느리고 건주위의 파저강(婆猪江) 올미부(兀彌部)의 여러 요새를 소탕했다.

1468(세조 13) 우의정(右議政)을 거쳐 영의정(領議政)에 올랐으나 반란을 꾀했다는 류자광(柳子光)의 무고로 국문(鞠問)을 받던 남이가 고문에 못이겨 그와 함께 모반에 가담했다고 발성하자 체포되어 남 이와 함께 사형되었다. 1818(순조 18) 누명이 풀리고 복관(復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