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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강씨] 강조(康 調)

작성일 : 2017-06-08 13:30 수정일 : 2017-06-08 13:50

? ~ 1010 (현종 1) 고려(高麗) 목종(穆宗) 때 중추원사(中樞院事)․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가 된 후에 서북면 도순검사(西北面都巡檢使)로 부임했다. 1009년(목종 12) 김치양(金致陽)이 천추태후(千秋太后:목종모)와 통하여 낳은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 하자 왕명으로 개경(開京)을 지키려고 동주(洞州:서흥)까지 이르렀으나 여기서 김치양 일파가 자기를 제거 하기 위해 왕명을 사칭했다는 소문을 듣고 본영으로 되돌아 갔다.

뒤에 아버지로부터 다시 왕은 죽고 간신들이 국사를 전횡 한다는 연락을 받고, 5천의 군사를 이끌고 평주(平州)에 도착, 왕이 아직 살아 있음을 알았으나 마침내 폐립(廢立)을 결심, 별장(別將)을 파견하여 대량원군(大良院君:현종)을 옹립하고 치양과 태후을 일파를 모두 제거, 목종을 폐하여 양국공(讓國公)으로 삼았다가 얼마 뒤에 살해했다.

현종(顯宗)이 즉위하자 중대사(中臺使)가 되었고, 이듬해 목종 살해 사건을 문죄(問罪)한다는 구실로 거란(거란)의 성종(聖宗)이 40만 대군으로 침입해오자 행영 도통사(行營都統使)가 되어 30만 군대를 이끌고 통주(通州)에서 싸웠으나 패하여 사로잡혔다. 성종(聖宗)으로 부터 신하가 될 것을 권유받았으나 끝까지 이를 거부, 살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