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김해허씨(金海許氏),김해허씨시조,허염(許琰),김해허씨조상

작성일 : 2017-06-02 15:08 수정일 : 2018-09-04 15:31

김해허씨시조 및 본관의 유래

김해(金海)는 경상남도(慶尙南道) 남동부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가락국(駕洛國)의 문화 중심지로서 532(신라 법흥왕 19)에 신라에 병합되어 금관국(金官國)이 되었다. 그 후 금관소경(金官小京)으로, 680(문무왕 20)에는 김해(金海)로 개칭하여 소경을 두었다. 고려 때에는 김해부(), 995(성종 14)에는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 1000(목종 3)에는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 1270(원종 11)에는 금녕도호부(金寧都護府)의 일부가 되었다가 부민(府民)의 반란으로 1276(충렬왕 2)에 현(), 그 후 금주목(金州牧)김해부(金海府)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가 되었다.


1413(조선 태종 13) 도호부로 고쳤다가 세조 때에는 진()을 두었으며, 1895(고종 32)에 군()이 되었고, 1981년에 김해읍(金海邑)이 시()로 승격되었다. 김해허씨(金海許氏)의 시조(始朝)는 허 염(許 琰)으로 가락국(駕洛國) 수로왕비(首露王妃)인 허황후(許皇后)35세 손으로 전()하며,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그는 고려(高麗) 때 삼중대광(三重大匡)을 지내고 가락군(駕洛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시조(始祖)의 세거지(世居地)인 김해(金海)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가락군 인전파(駕洛君仁全派)호은공 기파(湖隱公麒派)중승공 인파(中承公麟派)전직공 인부파(典直公仁副派)증성군 구년파(甑城君龜年派)판서공 언룡파(判書公彦龍派)상서공 상파(尙書公相派) 등 크게 7파로 분파(分派)되었다.


김해허씨조상

고려(高麗) 충렬왕(忠烈王) 때 지공거(知貢擧: 시험관)를 지낸 유전(有全)이 충숙왕(忠肅王) 때 가락군(駕洛君)에 봉해지고,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에 이어 정승(政丞)이 되었으며 옹()은 문과에 급제한 후 헌납(獻納)이 되었고,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냈으며 성품이 청렴강직(淸廉剛直) 했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백기(伯琦)와 목사(牧使) 수겸(守謙)이 유명했고, 한말(韓末)의 의병장(義兵將) ()3백 명의 선발대로 일본 통감부(日本統監府)를 격파하려다 실패하고, 일본군(日本軍)에게 체포되어 서울 서대문 감옥(監獄)에서 옥사했다. 그외 독립운동가인 겸()()병률(秉律)() 등이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김해허씨(金海許氏)는 전국에에 134,06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