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협계태씨시조(陜溪太氏),태중상(太仲象),협계태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28 10:46 수정일 : 2019-10-31 14:55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협계태씨(陜溪太氏)의 시조(始祖)는 중국(中國) 속말(粟末) 출신인 태중상(太仲象)이다.「협계태씨족보(陜溪太氏族譜)」에 의하면 중상(仲象)은 천문(天文)․지리(地理)와 병법(兵法)에 능통(能通)했으며, 서기 696년(당나라 중종 사성 13, 신라 효소왕 5) 고구려(高句麗)의 유민(遺民)을 이끌고 요수(遼水)를 건너 태백산(太白山) 동북(東北)으로 본거(本據)를 옮겨 말갈(靺鞨)과 통합하여 진국(震國)을 세웠다.

중상(仲象)의 18 세손 집성(集成)이 고려(高麗) 고종(高宗) 때 어사대부(御史大夫)로 대장군(大將軍)에 올라 1231년(고종 18) 몽고군(蒙古軍)이 내침하자 서북면 병마사(西北面兵馬使)가 되어 이를 격파하는데 크게 공(功)을 세워 협계군(陜溪君)에 봉해지고 사공(司空)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집성(集成)을 중시조(中始祖 : 일세조)로 하고, 본관(本貫)을 협계(陜溪)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협계(陜溪)는 황해도 신계군(新溪郡)에 있었던 고려시대의 지명(地名)으로, 고구려 때에는 수곡성(水谷城)이라 하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8년(경덕왕 17)에 단계현(檀溪縣)으로 고쳤다. 그러다가 940년(고려 태조 23)에 협계로 고쳐져 곡주에 예속되기는 하였으나 1396년(태조 5) 신은현(新恩縣)에 통합하기까지 그 지명이 지속되었다. 감무(監務)를 두었던 신은현(新銀縣)과 협계현(陜溪縣)의 지명을 한 자씩 따서 신계군(新溪郡)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협계태씨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집성(集成)의 아들 정취(貞就)가 충렬왕(忠烈王) 때 태정취(太貞就) 고려조(高麗朝)에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냈으며, 손자(孫子) 영재(永財)는 문과에 급제하여 문하시랑(門下侍郞)에 올랐고, 판병부사(判兵部事)를 지내고 청성군(淸城君)에 봉해진 경후(慶後)와 함께 가문을 중흥시켰다.

조선조(朝鮮朝)에서는 판병부사(判兵部事)를 지낸 경후(慶後)의 아들 응진(應辰)이 정종(定宗) 때 담양 도호사(潭陽都護使)를 거쳐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이르렀고, 그의 손자(孫子) 이(異)는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훈련원 참군(訓練院參軍)․함평 현감(咸平縣監)․제주 목사(濟州牧使) 등을 역임하여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그 밖의 인물(人物)로는 형조 참판(刑曹參判)을 지낸 맹인(孟仁)과 직제학(直提學)을 역임한 맹의(孟義),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른 우림(雨霖)등이 유명했으며, 일민(逸民)은 승사랑(承仕郞)을 지내고 숙종(肅宗) 때 통훈대부(通訓大夫)․장악원정(掌樂院正)에 추증되어 용양위 부사과(龍驤衛副司果)를 지낸 희(熙),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한 윤민(潤民), 부총관(副摠管)을 지낸 홍묵(弘黙)․상주(相周)․학두(學斗), 중추부사(中樞副使)를 역임한 석항(碩恒) 등과 함께 명문 가문을 빛냈고, 효자(孝子) 원풍(元豊)과 학자(學者) 언중(彦中)이 선조(先祖)의 위업을 받들어 명망높은 가문을 더욱 유명하게 하였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협계태씨(陜溪太氏)는 전국에 89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협계태씨조상인물

태정취(太貞就) 고려조(高麗朝)에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냈다.

태영재(太永財) 고려(高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문하시랑(門下侍郞)을 역임했다.

태경후(太慶後) 고려(高麗) 때 판병부사(判兵部事)를 지냈다.

태응진(太應辰) 호(號)는 초곡(草谷). 조선에서 도호부사(都護府使)를 역임하였다.

태석란(太石蘭) 조선(朝鮮) 때 참판(參判)을 지냈다.

태이(太 異) 조선에서 목사(牧使)를 역임하였다.

태맹인(太孟仁) 자(字)는 대의(大義), 호(號)는 매곡(梅谷). 조선조(朝鮮朝)에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이르렀다.

태맹의(太孟義) 호(號)는 유천(柳川). 조선(朝鮮)에서 직제학(直提學)을 지냈다.

태맹지(太孟智) 호(號)는 죽포(竹圃). 조선(朝鮮)에서 승의랑(承議郞)에 올랐다.

태우림(太雨霖) 자(字)는 무익(茂益).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태지(太 知)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를 지냈다.

태옥림(太沃霖) 호(號)는 금계(錦溪). 조선조(朝鮮朝)에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올랐다.

태은정(太殷鼎) 자(字)는 덕후(德厚). 조선(朝鮮) 때 장사랑(將士郞)으로 순릉 참봉(順陵參奉)을 지냈다.

태한정(太漢鼎) 자(字)는 국보(國輔). 조선(朝鮮)에서 순릉 참봉(順陵參奉)을 지냈다.

태응정(太膺鼎) 초명(初名)은 응두(膺斗). 조선조(朝鮮朝)에 군자감 주부(軍資監主簿)를 거쳐 개령 현감(開寧 縣監)을 역임하였다.

태수종(太秀宗) 호(號)는 구미(九美). 조선(朝鮮) 때 영릉 참봉(英陵參奉)을 지냈다.

태응천(太應天) 자(字)는 언계(彦啓), 호(號)는 용암(聾岩). 조선 때 장사랑(將士郞)으로 순릉참봉(順陵參奉)을 지냈다.

태수(太 秀) 조선(朝鮮) 때 장사랑(將士郞)에 이르렀다.

태익(太 益) 자(字)는 백겸(伯謙). 조선(朝鮮)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태천수(太天壽) 조선조(朝鮮朝)에 도사(都事)를 역임했다.

태희(太 熙) 조선 때 용양위 부사과(龍驤衛副司果)를 지냈다.

태충즙(太忠楫) 조선(朝鮮) 때 선략장군(宣略將軍)에 이르렀다.

태원희(太元熙) 조선에서 훈련원 판관(訓練院判官)을 지냈다.

태색(太 穡) 자(字)는 군실(君實), 호(號)는 공북재(拱北齋). 조선(朝鮮) 때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태일민(太逸民) 자(字)는 자안(子安). 조선(朝鮮) 때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지냈다.

태일신(太日新) 조선(朝鮮)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선무랑(宣武郞)에 이르렀다.

태일(太逸) 조선(朝鮮)에서 장의(掌議)를 역임했다.

태윤민(太潤民) 조선(朝鮮)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태인국(太仁國) 자(字)는 의백(義伯). 조선조(朝鮮朝)에 장사랑(將士郞)에 이르렀다.

태회극(太會極) 호(號)는 초은(樵隱). 조선에서 형조 정랑(刑曹正郞)을 역임하였다.

태학관(太學觀) 자(字)는 사원(士元), 호(號)는 매재(梅齋). 조선 때 부총관(副摠管)을 지냈다.

태학환(太學煥) 자(字)는 사수(士秀). 조선조에 참의(參議)를 지냈다.

태학면(太學冕) 자(字)는 중민(仲民). 조선(朝鮮)에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태두성(太斗星) 자(字)는 사극(四極). 조선 때 참찬관(參贊官)을 지냈다.

태홍린(太弘麟) 자(字)는 성희(聖希). 조선 때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태홍묵(太弘黙) 자(字)는 영진(永振). 조선조(朝鮮朝)에 부총관(副摠管)을 지냈다.

태중경(太重慶) 자(字)는 사미(士美). 조선조(朝鮮朝)에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태상주(太相周) 자(字)는 성좌(聖佐). 조선(朝鮮)에서 부총관(副摠管)을 지냈다.

태응화(太應和) 자(字)는 덕보(德甫). 조선조(朝鮮朝)에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태두문(太斗文) 조선(朝鮮)에서 중추부사(中樞副使)를 역임하였다.

태학기(太學基) 자(字)는 사명(士明), 호(號)는 성암(星庵). 조선(朝鮮)때 참의(參議)를 지냈다.

태학춘(太學春) 자(字)는 군서(君瑞). 조선 때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태학량(太學良) 자(字)는 내진(乃振). 조선 때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다.

태학두(太學斗) 자(字)는 사행(士行), 호(號)는 석천(石泉). 조선조(朝鮮朝)에 부총관(副摠管)을 역임하였다.

태극순(太極淳) 자(字)는 치숙(致淑), 호(號)는 간산(艮山). 조선(朝鮮)에서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태석항(太碩恒) 조선조에 중추부사(中樞副使)를 지냈다.

태위지(太渭至) 자(字)는 여우(呂遇). 조선(朝鮮) 때 참찬관(參贊官)을 역임하였다.

태성호(太成豪) 조선(朝鮮)에서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태시화(太時和) 조선조에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이르렀다.

태천부(太天富) 조선 때 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역임하였다.

태현후(太賢垕) 조선 때 군자감 주부(軍資監主簿)를 지냈다.

태운혁(太雲爀) 조선에서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태덕보(太德甫) 조선조(朝鮮朝)에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태귀생(太貴生) 자(字)는 진옥(振玉), 호(號)는 삼현정(三賢亭). 조선(朝鮮) 때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태상선(太尙善) 조선조에 사재감정(司宰監正)을 지냈다.

태성우(太聖祐) 자(字)는 사민(士敏), 호(號)는 석성(石醒). 조선에서 의금부사(義禁府事)를 지냈다.

태성노(太聖老) 조선조(朝鮮朝)에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태원풍(太元豊) 자(字)는 여장(汝長), 호(號)는 농은(聾隱). 조선(朝鮮)때 효자(孝子)로 향민(鄕民)의 칭송을 받았다.

태명식(太明植) 조선에서 판사(判事)를 역임하였다.

태언중(太彦中) 자(字)는 내윤(乃允), 호(號)는 춘수당(春睡堂). 조선(朝 鮮) 때 학자(學者)로 후진 교육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