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완산최씨시조(完山崔氏),최순작(崔純爵),완산최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25 14:06 수정일 : 2019-07-16 11:16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완산최씨(完山崔氏)는 경주최씨(慶州崔氏)에서 분적(分籍)한 완산군(完山君) 최순작(崔純爵)의 후손으로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되어 정확한 계대(系代)를 알 수는 없으나, 후손 최수강(崔秀岡)이 고려 말(高麗末)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落鄕)하였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중시조(中始祖)로 하고 완산(完山)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완산(完山)은 전주(全州)의 고호(古號)이다. 전주(全州)는 전라북도(全羅北道) 중앙(中央)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고대(古代) 마한(馬韓)의 원산성(圓山城)에서 유래하며, 백제시대(百濟時代)에 완산(完山) 또는 비사벌(比斯伐)․비자화(比自火) 등으로 불리우다가 555년(신라 진흥왕 16)에 완산주(完山州)로 하였다.

그 후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 : 제35대 왕, 재위기간 : 742~765)이 완(完)을 의역(意譯)하여 전주(全州)로 고쳤고, 견훤(甄萱)이 후백제(後百濟)를 세워 40여 년간 이곳을 도읍으로 하였으나, 왕건(王建)이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한 때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라 하다가 공민왕(恭愍王)이 완산부(完山府)로 하였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태조(太祖)가 선조(先朝)의 고향(故鄕)이라 하여 완산 유수부(完山留守府)로 개칭하였다가 1403년(태종 3) 다시 전주부(全州府)로 개편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은 경(涇)이 아들 수지(水智)와 같이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역임했고 명우(命佑)는 벼슬이 부제학(副提學)에 이르렀다.

그 외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정정(禎貞)․병확(秉矱)이 있으며, 정우(正愚)는 학자(學者)로 명성을 떨쳤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완산최씨(完山崔氏)는 전국에 3,56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완산최씨조상인물 

최경(崔 涇)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최수지(崔水智) 자(字)는 윤보(潤甫), 호(號)는 검재(儉齋). 조선조에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최수용(崔水勇) 조선(朝鮮) 때 참군(參軍)을 역임하였다.

최명우(崔命佑) 조선(朝鮮) 때 부제학(副提學)을 지냈다.

최준(崔 峻) 호(號)는 임헌(林軒). 조선(朝鮮) 때 군수를 지냈다.

최경운(崔慶雲) 조선(朝鮮) 때 우통례(右通禮)를 역임하였다.

최연(崔 演) 자(字)는 호원(浩源). 조선에서 찰방(察訪)을 지냈다.

최섬(崔 暹) 조선조(朝鮮朝)에서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최광삼(崔光參) 자(字)는 도원(道源), 호(號)는 만매와(晩梅窩). 조선 때학자(學者)로서 명성을 떨쳤다.

최필태(崔必泰) 자(字)는 노첨(魯瞻), 호(號)는 눌건(訥蹇). 조선 때 덕망 높은 학자였다.

최필숭(崔必嵩) 자(字)는 낙첨(洛瞻). 조선(朝鮮) 때 학자였다.

최필오(崔必五) 자(字)는 중첨(中瞻). 조선(朝鮮)에서 감역(監役)을 역임하였다.

최정정(崔禎貞) 자(字)는 학지(鶴之).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최병확(崔秉矱) 자(字)는 극첨(極瞻), 호(號)는 국포(菊浦).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했다.

최상금(崔祥嶔) 자(字)는 내현(乃顯), 호(號)는 농와(農窩). 조선조의 효자로 향리(鄕里)에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최필순(崔必珣) 조선(朝鮮) 때 비서감(秘書監)을 지냈다.

최태진(崔台鎭) 자(字)는 응천(應天), 호(號)는 오산(五山). 조선(朝鮮)때 학자였다.

최규승(崔圭升) 자(字)는 성가(聖可), 호(號)는 사양(泗陽). 조선에서 지평(持平)을 지냈다.

최정우(崔正愚) 자(字)는 순부(純夫), 호(號)는 건재(健齋). 조선(朝鮮)때 학자였다.

최한승(崔翰升) 호(號)는 경산(景山). 조선(朝鮮) 때 부사직(副司直)을 역임하였다.

최동준(崔東駿) 자(字)는 응함(應涵). 조선(朝鮮)에서 감역(監役)을 역임하였다.

최충보(崔衝輔)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