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상주최씨시조(尙州崔氏),최춘원(崔春元),상주최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24 17:18 수정일 : 2019-02-14 09:51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상주최씨는 경주 최씨(慶州崔氏)의 시조 문창후(文昌候) 최치원(崔致遠)의 17세손인 최춘원(崔春元)을 시조(始祖)로 받들고 있다.

「상주최씨족보(尙州崔氏族譜)」에 의하면 그는 참봉(參奉) 윤세(允世)의 아들로 1553년(명종 8)에 태어나 급제하여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이어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숙종조(肅宗朝)에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에 증직(贈職)되었다.

그 후 간신배의 모략에 참소되어 운산(雲山)으로 유배(流配)되었고, 그의 후손들이 봉군(封君)된 지명(地名) 상주(尙州)를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상주(尙州)는 경상북도 서쪽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삼한시대에 진한(辰韓)의 영토였으나 185년(신라 벌휴왕 2, 고구려 고국천왕 7) 사벌국(沙伐國 : 혹은사불국)으로 독립해 오다가 신라 첨해왕(沾解王) 때 정벌되어 상주(尙州)로 고쳐 군주(軍主)를 두었다. 진흥왕(振興王)이 상락군(上洛郡)으로 고치고 신문왕(神文王) 때 다시 사벌주(沙伐州)로 개칭하였다가 경덕왕(景 德王) 때 상주로 하는등 많은 변천을 거쳐 고려 성종(成宗) 때 귀덕군(歸德郡)이라하여 영남도(嶺南道)에 속했다.

1012년(현종 3) 다시 상주안무사(上奏案撫使)로 고쳐서 8목(牧)의 하나로 정하였다가 조선이 개국하여 관찰사(觀察使)를 두었으며, 1910년 상주군(尙州郡)으로 개칭되어 함창군(檻倉郡) 일원이 편입되고, 1988년 시(市)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인물(人物)로는 춘원(春元)의 현손(玄孫) 수역(壽域)이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군자감정에 증직(贈職)되었고, 그이 아들 명춘(明春)은 통정대부로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에 증직되었다.

그외 훈도(訓導)를 역임한 여급(女岌), 숙종(肅宗) 때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을 지낸 준방(俊傍), 수문장(守門將) 만장(萬丈), 현종조(顯宗朝)에 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지낸 주국(柱國) 등이 상주 최씨를 더욱 빛냈다.


인 구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상주최씨(尙州崔氏)는 전국에 총 517가구, 1,685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역대 인물 - 상주최씨조상인물 

최보정(崔輔貞) 조선 선조조(宣祖朝)에 장사랑(將仕郞)으로 상원 훈도(祥原訓導)를 역임하였다.

최수역(崔壽域) 조선조에 통훈대부(通訓大夫)로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증직되었다.

최명춘(崔明春) 자(字)는 인선(仁善). 조선조(朝鮮朝)에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장례원 판결사(掌隷院判決事)에 증직(贈職)되었다.

최여급(崔汝岌) 조선조(朝鮮朝)에 훈도(訓導)를 역임하였다.

최대업(崔大業) 자(字)는 군필(君弼). 조선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 旨)를 지내고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거쳐 홍문관(弘文館)․예문관 (藝文館)의 제학(提學)에 제수되었으며, 상주군(尙州郡)에 봉(封)하여졌다.

최두방(崔斗傍) 조선조에 중추부사(中樞府事)에 증직(贈職)되었다.

최준방(崔俊傍) 자(字)는 석장(石墇). 조선 숙종조(肅宗朝)에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로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을 역임하였다.

최만장(崔萬丈) 조선(朝鮮)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선략장군(宣略將軍)으로 수문장(守門將)을 지냈다.

최봉우(崔鳳宇) 조선조에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증직(贈職)되었다.

최주국(崔柱國) 조선 현종조(顯宗朝)에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용양위부호군(龍讓衛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최학명(崔鶴明) 조선조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증직(贈職)되었다.

최이득(崔以得) 자(字)는 현백(賢伯).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