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부안최씨 시조(扶安崔氏), 최창일(崔昌一),부안최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24 16:13 수정일 : 2019-02-13 12:32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부안최씨(扶安崔氏)의 시조 최창일(崔昌一)은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의 후손으로 청주 최씨(淸州崔氏)에서 분적(分籍)되었다. 그는 고려 말(高麗末)에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하고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지냈으며조선(朝鮮)이 개국되자 벼슬을 버리고 부안(扶安)으로 낙향(落鄕)하였다.

그의 아들 도명(道明)은 세종 때 호조 좌랑(戶曹佐郞)으로 왕(王)에게 직간(直諫)을 하다가 길주(吉州)의 명원(明原)으로 유배(流配)되었다. 그리하여 그 곳에 정착(定着)하여 누대(累代)에 걸쳐 세거(世居)하였으므로 조상의 전세거지인 부안(扶安)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부안(扶安)은 전라북도(全羅北道) 남서부 변산반도(邊山半島)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부령(扶寧)․보안(保安)의 합명(合名)이다. 부령(扶寧)은 본래 백제(百濟)의 개화현(皆火縣) 또는 계발현(戒發縣)이었는데,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이 부령(扶寧)으로 고쳐 고부군(古阜郡)에 편입시켰고 다시 설치하여 보안(保安)을 겸임하였다. 1416년(태종 16) 보안(保安)을 병합하여 부안(扶安)으로 고치고 현(縣)으로 삼았다가 1895년(고종 32) 군(郡)으로 승격하였으며, 1914년 고부군(古阜郡)의 백산면(白山面)․거마면(巨麻面)․덕림면(德林面)을 편입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人物)로 도명의 아들 을제(乙濟)가 직장(直長)을 지냈으며, 판관(判官)을 지낸 을제(乙濟)의 동생 을수(乙壽)가 있다. 조선(朝鮮)때 사직(司直)을 역임한 언인(彦仁)은 부안 최씨(扶安崔氏)를 빛냈다.


인 구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부안최씨(扶安崔氏)는 전국에 총 309가구, 95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부안최씨조상인물 

최도명(崔道明) 조선조(朝鮮朝)에 호조 좌랑(戶曹佐郞)을 지냈다.

최을제(崔乙濟) 조선(朝鮮)때 직장(直長)을 역임하였다.

최을수(崔乙壽) 조선(朝鮮)때 판관(判官)을 지냈다.

최호인(崔好仁) 조선(朝鮮)에서 봉사(奉事)를 지냈다.

최언인(崔彦仁) 조선조(朝鮮朝)에 사직(司直)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