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밀양최씨시조(密陽崔氏),최익대(崔益大),밀양최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24 15:49 수정일 : 2019-02-13 12:27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밀양최씨(密陽崔氏)는 우리나라 최씨의 대종(大宗)인 경주 최씨(慶州崔氏)에서 분적(分籍)된 계통(系統)으로 알려졌으나 성관(姓寬) 연혁에 대해서는 미상(未詳)하다.

「밀양최씨계해보(密陽崔氏癸亥譜)」에 이하면 밀양 최씨는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 : 경주 최씨의 시조)의 후손인 화숙공(和淑公) 최현우(崔玄祐)의 15세손으로 기록된 최익대(崔益大)가 조선(朝鮮) 숙종(肅宗)때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용양위 부호군(龍楊衛副護軍)을 지냈으며, 경종(景宗)이 즉위한 후 몸이 병약하고 후사(後嗣)가 없었으므로 왕세제(王世弟) 연잉군(延礽君 : 후에 영조가 됨)을 책봉하고 세제의 대리청정을 주장하다가 소론(少論)으로부터 탄핵을 받았던 노론(老論)의 영수 김창집(金昌集 : 당시 영의정)이 화(禍를)를 입었던 사건에 연루되어 각처(各處)에 은거(隱居)하다가 경기도 수리산(修理山)에 들어가 변관명(變寬名)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은 사실(事實)을 고증(考證)할 문헌이 없다.

그 후 익대(益大)는 영조(英祖)가 즉위하자 사면(赦免)되었고, 그의 후손들이 전국에 산거(散居)하면서 3세손 경륜(景崙)이 한성성적(漢城成籍)에 본관(本貫)을 밀양(密陽)으로 기록한 연유로 해서 익대(益大)를 일세조(一世組)로 하고 밀양을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밀양(密陽)은 경상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원래 삼한시대(三韓時代)에 변한(弁韓)의 일부로 가락국(駕洛國)애 속하였으며 신라 법흥왕(法興王) 때 신라에 병합되어 추화군(推火郡)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밀성군(密城郡)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때 와서는 995년(성종 16)에 밀주(密州)로 하였고, 1390년(공양왕 2) 밀양부로 승격, 그 후 여러차례의 변천을 거듭하다가 1895년 밀양군으로 개칭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통훈대부(通薰大夫)로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증직(贈職)된 경륜(景崙)의 아들 도신(道信)이 호조 참의(戶曹參議)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손자(孫子) 치갑(致甲)은 1841년(헌종 7)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용양위 부호군(龍楊衛副護軍)을 거쳐 창덕궁위장(昌德宮衛將)을 역임하여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밀양최씨(密陽崔氏)는 전국에 4,74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밀양최씨조상인물 

최경륜(崔景崙) 1808(순조 8)~1870(고종 7) 자(字)는 성득(成得), 치겸(致謙)의 아들. 조선(朝鮮)때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추증되었다.

최경악(崔景岳) 1811(순조 11)~1873(고종 10) 치겸(致謙)의 차남. 조선(朝鮮)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호조 참의(戶曹參議)에 추증되었다.

최경문(崔敬文) 자(字)는 순룡(順龍). 조선(朝鮮)때 이조 참판(吏曹參判) 겸 의금부사(義禁府事)에 추증되었다.

최치갑(崔致甲) 자(字)는 장석(長錫). 1882년(고종 19)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용양위 부호군(用楊衛副護軍)을 거여 창덕궁위장(昌德宮衛將)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