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고부최씨시조(古阜崔氏),최척(崔陟),고부최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24 14:10 수정일 : 2019-02-15 14:22

시조 및 본관의 유래

고부최씨(古阜崔氏)는 경주 최씨(慶州崔氏)의 시조(始祖)인 문창후(文昌候) 최치원(崔致遠)의 후손으로 판봉사시사(判奉常寺事)를 역임하고 평북 구성(平北龜城)에 정착한 최척(崔陟)을 시조(始祖)로 하고 선조(先祖)들의 전세거지(前世居地)인 고부(古阜)를 본관(本貫)으로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고부(古阜)는 전라북도(全羅北道) 정읍군(井邑郡)에 속해있던 옛 지명(地名)으로, 본래 백제 때의 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을 통일신라의 경덕왕(景德王)이 고부로 고쳤다. 고려는 이 지방을 다스리던 후백제가 망한 936년(태조 19), 이를 영주(瀛州)라 칭하고 관찰사(觀察使)를 두었으며, 광종(光宗) 때에는 안남도호부9安南都護府)를 두는 등 중요한 행정 구역의 하나를 이루었다.

현종(顯宗)때에 이르러서는 고부군으로 그 이름을 다시 고치고, 충렬왕(忠烈王)때 잠시 영광군(靈光郡)에 병합되었다가 곧 복구되어 조선 말기까지 존속하였다. 1914년 백산면(白山面), 거마면(巨麻面)․덕림면(德林面)은 부안군에 속하고 나머지 지역은 정읍군에 병합되어 그 일부 지역만 고부면으로 남아 있다.


대표적인 인물

후손 용인(龍仁)은 조선(朝鮮)에서 참의(參議)를 역임하였으며, 치민(致敏)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또한 치항(致항)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고, 종수(鍾秀)는 감찰(監察)을, 태덕(泰德)은 의관(議官)을 역임했다.

그 외 희철(喜哲 : 오위장)․의걸(義杰 : 별장)․득룡(得龍 : 부사과)등이 유명했고, 종익(鐘翼)은 주부(主簿)를 역임하여 장사랑(將仕郞)에 오른 호정(虎精)과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고부최씨(古阜崔氏)는 전국에 63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고부최씨조상인물 

최용인(崔龍仁) 조선(朝鮮)때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최득견(崔得堅) 조선조(朝鮮朝)에도령(都領)을 지냈다.

최치민(崔致敏) 조선 때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최순정(崔順廷) 조선(朝鮮)때 첨정(僉正)을 역임하였다.

최치항(崔致恒) 조선(朝鮮)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최종수(崔鍾秀) 조선조(朝鮮朝)에 감찰(監察)을 지냈다.

최종수(崔鍾秀) 조선조(朝鮮朝)에 감찰(監察)을 지냈다.

최태덕(崔泰德) 자(字)는 보여(補汝). 조선 때 의관(議官)을 역임하였다.

최태인(崔泰仁) 조선(朝鮮)때 궁내부주사(宮內府主事)를 역임하였다.

최행룡(崔行龍) 자(字)는 여운(汝雲). 조선조에도정(都正)을 지냈다.

최찬익(崔贊益) 조선(朝鮮)때 감찰(監察)을 역임했다.

최대항(崔大恒) 자(字)는 홍규(鴻逵). 조선 때 도사(都事)를 역임했다.

최봉걸(崔鳳杰) 조선조(朝鮮朝)에 선략장군(宣略將軍)에 올랐다.

최희호(崔喜昊) 조선(朝鮮)때 권관(權官)을 지냈다.

최종심(崔鍾心) 조선(朝鮮)때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였다.

최희수(崔喜秀) 조선조(朝鮮朝)에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최희척(崔喜倜) 조선조(朝鮮朝)에도정(都正)을 지냈다.

최희림(崔喜林) 조선(朝鮮)때 절제사(節制使)를 역임했다.

최희철(崔喜哲) 조선(朝鮮)때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최의걸(崔義杰) 조선조(朝鮮朝)에 별장(別將)을 지냈다.

최득룡(崔得龍) 자(字)는 여황(汝煌). 조선(朝鮮)때 부사과(副司果)를 지냈다.

최태경(崔泰璟) 조선(朝鮮)에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최종익(崔鍾翼) 조선(朝鮮)때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

최호정(崔虎精) 자(字)는 정수(貞叟). 조선(朝鮮)때 장사랑(將仕郞)에 올랐다.